기관 080902 조선500년 역사기행 [용인]
페이지 정보
작성자최고관리자 조회 668회 작성일 19-04-12 12:25본문
080902 조선500년 역사기행 [용인]
8월 31일
중둥친구들과의 조선왕조 500년의 흔적이 남아있는 역사기행..
경복궁, 종묘, 사직단 그리고 서대문형무소 까지의 역사 탐방..
아! 건물의 처마 부터 추출돌까지 이런 의미와 조상의 생각이 담은 소중한 의미를...
무심히 지나쳐 버리곤 했던 것들의 중요성이란 , 나를 고개숙이게 만든다.
광화문을 지나면 세척과 마음 정화의 의미를 담은 금천교를 건너 근정전(신하또는 외국의 사신을 맞이한곳)으로 향했다.
근정문에서 근정전 계단까지의 길은 세갈래로 되어 있는데 그 길을 삼도(3가지길),또는 어도라고 한다.
그 길 양쪽으로 양쪽으로 신하들이(무신,문신) 걸어갈 수 있는 길이고 가운데 길은 왕족만이 다닐 수 길이라고 한다.
나는 친구들과 하루 온 정일 삼도중에 왕의 길로만 다녔다 ㅋㅋ
근정전 계단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자리에 둥근 쇠고리가 박혀 있었는데.
이는 큰행사나 조회를 할 때 비, 햇빛 등을 가리기 위한 차양을 맬 때 사용하는 고리라 하니 당시 조선사회가 계급을 얼마나 중요시했는지 알 수 있었다.
끝으로 경복궁에서 인상깊었던 것은 십장생 굴뚝이 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 동궁!
평생 왕후로 궁 바깥으로 못나가는 왕후들를 위한 정원, 꽃동산?
아름다운 정원이지만 조선 궁에 바같출입이 금지된 여인네들의 서글픈 감옥생활의 신음이 베어나온듯 하다.
이씨조선의 정당성을 위하여 만들어진 조선왕조의 왕과 왕비, 그리고 죽은 후 왕으로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다는 종묘와 사직단을 지나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인 서대문 형무소 화려한 궁과 달리 설레이기엔 무거운 서대문 형무소의 외벽과 차디찬..독방의 마룻바닥..
단지 민족의 해방을 마음에 품었다는 이유로 그들이 좁은 1평남짓한 차딛찬 독방 바닥과 손바닥 만한 좁은 창으로
죽음까지도 내버리며 바라본 광복의 신념은 무엇이었을까?
오늘 기행을 통해 친구들 사진 찍느라 너무 즐겁게만 다녀오진 않았나싶다..
다음번엔 카메라를 들지 말고.. 혼자 한번 다녀와야겠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